중동 긴장에 유가 100달러 돌파…채권금리까지 뛰며 세계경제 다시 흔들
미국과 이란 사이의 군사적 긴장이 다시 높아지면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여기에 미국·유럽·일본의 국채금리까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이 지정학적 위험과 물가 압력을 동시에 경계하는 모습이다. 반면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에 힘입은 제조업 경기 회복세는 이어지고 있어 세계경제가 상반된 신호를 보내고 있다.
로이터와 AP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1일(현지시간) 브렌트유는 전 거래일보다 4% 이상 오른 배럴당 102.3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92.87달러까지 상승했다. 미국의 중동 군사력 증강 움직임과 중국의 석유제품 수출 중단 소식이 동시에 전해지면서 공급 불안 우려가 다시 커진 영향이다.
중동에서는 미국과 이란 간 협상이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AP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측의 최근 평화안을 충분하지 않다고 평가하면서 군사행동 재개 가능성을 거론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중동 지역에 추가 병력과 항공모함을 배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유조선 피격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다시 커지고 있다.
연료 공급 문제는 미국과 유럽 사이의 갈등으로도 번지는 분위기다. 로이터는 미국 정부가 프랑스와 독일에 비상용 디젤 비축분을 시장에 풀 것을 요구했으며,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미국산 디젤 수출을 제한하는 방안까지 거론했다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러시아산 공급 차질과 중동 불안에 중국의 수출 중단까지 겹치면서 국제 석유제품 시장의 공급 여력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 고유가에 국채금리까지 급등…금융시장 부담 확대
문제는 에너지 가격 상승이 이미 불안한 세계 채권시장과 맞물리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독일, 일본을 비롯한 주요국 국채금리는 최근 수십 년 사이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 시장에서는 높은 에너지 가격이 물가를 다시 자극하고, 각국 중앙은행이 높은 금리를 예상보다 오래 유지해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 부채 증가도 장기금리를 밀어 올리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AP에 따르면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장중 한때 5.34% 부근까지 상승한 뒤 5.23% 수준으로 내려왔다. 유럽 증시도 채권금리 급등의 영향을 받아 런던과 파리, 프랑크푸르트 주요 지수가 일제히 하락했다. 반면 미국 증시는 AI 관련주 강세에 힘입어 소폭 상승하면서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고금리와 고유가가 동시에 장기간 이어진다면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과 가계의 대출 부담이 높아지고 정부의 이자비용도 증가할 수 있다. 특히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는 물가와 무역수지를 동시에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
### 우크라이나에선 러시아 공습 확대…키이우 학교까지 드론 공격
유럽 동부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AP는 러시아 드론이 1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한 학교를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학생과 교직원들은 대피시설로 이동해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으며, 드론 탄두도 폭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력망과 주요 기반시설에 대한 공격도 확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의 드론 발사시설과 정유시설 등을 공격하고 있다. 겨울을 앞두고 양측이 상대의 에너지·군사 인프라를 집중적으로 겨냥하면서 전쟁이 다시 장거리 미사일과 드론 중심의 소모전 양상으로 강화될 가능성이 주목된다.
### 전쟁과 고유가 속에서도 AI 투자 열풍…한국·대만 제조업 호조
다만 세계경제 전체가 침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로이터가 각국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를 분석한 결과 9월 유럽과 아시아 제조업은 AI 관련 설비와 반도체 수요 확대에 힘입어 대체로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유로존 제조업 PMI는 52.9까지 상승해 2022년 5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독일과 네덜란드 등에서 AI 관련 자본재 수요가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AI 관련 수출 증가가 두드러졌다. 한국의 수출 증가세가 15년여 만에 가장 빠른 수준을 기록한 가운데 제조업 활동도 개선됐으며, 대만 PMI 역시 56.7까지 상승했다. 중국 제조업 생산도 기상 악화에 따른 일시적인 차질에서 회복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일본 제조업은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이에 따라 현재 세계경제에는 서로 반대되는 두 흐름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한쪽에서는 AI·반도체 투자가 제조업과 증시를 떠받치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중동 전쟁과 에너지 가격 상승, 높은 국채금리가 성장세를 압박하고 있다.
향후 가장 중요한 변수는 중동이다. 미국과 이란 사이의 협상이 진전돼 호르무즈 해협과 원유 공급에 대한 우려가 완화된다면 유가와 물가 압력도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군사적 충돌이 다시 확대될 경우 국제유가뿐 아니라 채권·주식·환율까지 동시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최근 시장 움직임은 단순한 원유 가격 상승에 그치지 않고 있다. **전쟁 위험 → 에너지 가격 상승 → 물가 우려 → 금리 상승 → 기업·가계 부담 증가**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다시 강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중동 정세가 당분간 세계경제의 가장 큰 불확실성 가운데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